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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화사 전기 중세시대

by mysterybutler 2021. 10. 12.

영국 문화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기중세시대: 11세기 -13세기

윌리엄의 통치(1066-1087)는 노르망 정복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는 성격의 것이었다. 앵글로 색슨 귀족은 완전히 몰락하여 색슨 시대의 지주들 가운데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귀족은 단지 2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고 이들 대신 노르만인들이 지주, 귀족이 되었다 약 12,000명의 노르만인들이 통치자가 되고 200여만명의 색슨인들이 평민층이 되었으며, 토지의 절반 정도가 노르만 침략자들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 결과 고대영어는 쇠락하여 하층민의 언어가 되고, 노르만 귀족들의 언어인 프랑스어와 라틴어가 학문과 행정의 언어가 되었다. 윌리엄은 사회와 정부를 재조직하였고 대륙의 제도인 봉건제를 도입하였다. 다만 영국의 봉건제는, 주군이 봉토를 수여하는 대가로 봉신은 각자의 주군에게 충성을 바쳐야하는 대륙의 봉건제와는 달리, 국왕을 하위 봉신들의 궁극적 충성의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왕권 강화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윌리엄이 영국의 왕이 된 후 중세 영국을 통치함에 잇어서 항상 남아있던 문제는 영토가 브리튼 섬과 노르망디 영지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왕의 부재기간 중의 통치를 위한 효율적 제도가 요망되었는데 강력한 왕이었던 헨리 1세는 회계청을 설치하고 순회판사 임명 등의 행정 체계 정비를 통해 이 문제르 해결 했다. 그의 장자가 먼저 죽음으로써 후계 문제가 복잡해졌는데 일단 헨리 1세의 조카 스티븐이 왕위를 계승하되 그가 죽으면 헨리의 딸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가 계승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헨리 2세의 아버지

헨리 2세 아버지는 앙주백작 제프리 플랜태지니트이었으므로 그의 시대부터를 플랜태지니트 왕조라 부른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아버지로부터 앙주를 상속받는데다가 아내 앨리노어로부터 아케텐과 가스코뉴까지 소유하게 되어 그의 영토는 영국에서부터 유럽 대륙의 피레네 산맥까지 이를 정도로 광대했다. 그는 영국보다 대륙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햇으므로 그의 부재 중에도 사법과 재정의 일상사를 다룰 수 있도록 지방행정이 발달되었고 그의 치세기간 중 현재에도 영어 사용권에서 시행되는 영국 보통법의 기본 원칙이 탄생했다. 보통법이라는 명칭은 주의 법정에서 운영되는 다양한 지역적 관습대신 왕국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헨리2세는 용병을 살 비용을 대기위해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것은 영국의 봉건제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즉 원래의 봉건제는 봉신이 주군에게 제공하는 군사적 봉사에 기반을 두고 잇는데, 영국에서는 봉건제 군사적 봉사가 세금으로 대체됨으로써 소위 아류 봉건제는 봉신이 주군에게 제공하는 군사적 봉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봉건제 군사적 봉사가 세금으로 대체됨으로써 소위 아류봉건제라 불리우는 영국 특유의 봉건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한편 헨리2세와 캔터베리 대주고 토마스 베켓과의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은 베켓이 그의 성당에서 살해되는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베캣은 곧 성자로 추앙되었고 나중에는 중세 영국 최대의 성인으로 간주되었다. 헨리 2세의 아들 중 사자왕이라 불릴 정도로 용맹스러웠던 리차드 1세가 왕위를 이었는데 그는 프랑스에서 잃었던 영토를 빼았는 등 훌륭한 왕이었지만 십자군 원정으로 거의 영국을 비워놓고 있었다. 반면 그의 뒤를 이은 동생 존은 프랑스 영토를 대부분 빼앗기는 등 외치에도 실패한데다가 국내에서도 교회와도 반목을 빚고 과다한세금 부과로 국민들 사이에서 완전히 인기를 일헝ㅆ다. 이것은 후대 문학엫서 로빈 훗 이야기가 존 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대 귀족들의 불만은 대헌장을 존왕이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식으로 표출되었고 이것은 왕과 귀족의 상호견제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존의 어린 후계자 헨리 3세는 그의 아버지가 잃었던 앙주지역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끝내 실패했다. 에드워드 1세는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강한 왕이었다. 그는 웨일즈를 정복하고 스코틀랜드에서의 왕권을 주장하며 침략을 자행했다. 내치에 있어서는 그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봉건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때가 되면 영어를 사회 모든 계층에서 사용하게 되고, 영국인들이 자신을 하나이며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드워드 2세는 총신들에게 빠져 국정을 망쳤고 완고한 성격이어서 대귀족들의 반발을 자초했다. 마침내 프랑스 출시느이 왕비 이자벨라는 반항세력을 규합해 왕을 굴복시키고 강제로 왕제에게 양위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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