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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학사 중세, 앵글로 색슨 시대

by mysterybutler 2021. 10. 12.

영국 문학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유럽 역사에서 중세라는 시기는 어떤 의미일까?
유럽 역사에서 중세라는 시기는 흔히 로마 제국의 붕괴로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데요.

middle age


중세(middle age,medieval)


이때, 중간이라는 단어 속에는 중세라는 시기가, 학식의 시원기인 그리스, 로마 문명과 그것의 재탄생기인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이 시기가 그리스 로마 문명의 재탄상을 가져왔다는 뜻, 중간에 놓여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 속에는 중세는 진정한 문명과 문명 사이에 있을 뿐, 그것 자신의 문명이라곤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중세를 암흑기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는 고전 시대의 문화 유산을 보전, 전파하거나 혹은 기독교적 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새롭게 탄생시킴으로써 서구 문화 전통의 초석을 놓았던 시기였다.
영국 역사에서 중세라고 불리워지는 시기는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앵글로 색슨족의 시대가 시작된 450년경부터 헨리 7세가 즉위하고 튜더왕조가 시작된 해인 1485까지의 대략 1000년의 시간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시기는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감행한 노르만 정복 사건에의해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시기로 다시 나눠진다. 1066년 이전의 시기의 영국 역사의 주인공이 이전에 이 섬을 차지하고 있던 켈트 족을 몰아내고 정착했던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이었다면, 1066년 이후엔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노르망인들이 영국의 지배권을 장악하면서 노르만 왕가, 플랜테지니트 왕가가 대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후에는 플랜테지니트 왕가의 후손들이 각각 요트가와 랭카스터가로 갈라져서 왕권을 놓고 싸움으로써 영국 중세기의 막을 내리고 튜더왕가에 의해 시작되는 르네상스기로 가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앵글로 색슨 시대란?(450년경 -1066)


영국의 초기 역사는 침입과 이주의 역사였다. 영국의 토착민은 켈트인들이었으나 기원전 55년 시저가 침략하면서 영국에 로마시대가 시작되었다. 로마군의 우월성과 켈트인 부족간의 갈등이 로마의 승리의 원인이 되었다. 로마가 파견한 총독이 행정을 담당하였으나 실제적인 일들은 지방에 맡겨졌다. 영국이 로마의 속주가 된 후 영국은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없었다. 4세기 후반 로마제국은 전반적으로 쇠퇴하게되고 본국의 수호에도 힘겨워하던 로마는 드디어 410년 영국에서도 철수를 하게된다. 로마인들이 남기고 간 공간은 앵글족과 색슨족이 채우게된다.
앵글로 색슨 족의 이동은 이미 300년 경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이들은 지속적으로 이주해와 각기 다른 지역에 정착하여 궁극적으로 7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이 건설한 왕국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지명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가령 동색슨인이 건설한 왕국 에섹스, 남색슨의 서섹스, 서색슨의 웨섹스 등이 그것이었다. 그 외에도 이스트 앵글리아, 머시아, 노섬브리아 ,켄트 왕국 등이 세워졌는데 이 왕국들의 흥망성쇠가 끊임없이 지속되어 6세기 켄트, 7세기 노섬브리아 ,8세기 머시아, 9세기 웨섹스 순으로 영국의 통일 왕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왕가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이미8세기 경에는 공통의 운명을 겪는 영국인이라는 의식이 생기고 있었다. 9세기 영국은 데인 족의 침입이라는 큰 사건을 겪는다. 이때 웨섹스는 비교적 안정된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 당시의 왕인 앨프레드대왕은 침략자로부터 영국을 구해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는 왕국의 부흥을 위해 행정을 정비하고 교육을 장려했다. 그는 영국을 주로 분할하여 행정의 편의를 도모하고 통일된 사법체계를 도입하였으며 성직자들에게 라틴어 교육을 강제하고 궁정학교를 설립하여 귀족들에게 문자를 가르쳤다. 그의 치세기간 중의 많은 라틴어 저술이 고대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 스스로도 보에티우스의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를 고대영어로 번역했다.

이 당시 왕은 위탄 회의에서 선출되는 형식을 따르고 있었는데 에드워드 고해왕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위탄 회의에서는 해럴드를 왕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자신의 혈통을 내세워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침입해 왔다. 헤이스팅스 싸움에서 해럴드가 전사하면서 윌리엄은 왕에 즉위하였고 영국에서는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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