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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전반 문학사

by mysterybutler 2021. 10. 13.

16,17세기의 시는 궁정적인 가치와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직 인쇄가 보편화되지않고 출판을 통한 수입이라는 것이 보잘것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당시 시인을 비롯한 문학가들, 특히 아마추어 상류계층이 아니었던 중간계급 이하의 시인들에게는 왕실이나 귀족의 후원을 받는것이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사실 이것은 묵학에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어서 공직을 받고 부를 얻는 유일한 길이 국왕의 후원을 얻는것이었던 당시 상황에서는 궁정은 기회도 주지만 실망도 안기는 곳이었고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면서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존 돈의 경우에서처럼 종종  이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는 곳이기도했다. 따라서 당시의 시는 궁정적이고 귀족적인 가치와 무관할 수 없었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소네트나 17세기 전반의 형이상학파 시와 왕당파 시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러한 특징을 보인다 당시의 시들 대부분이 인쇄과정을 거처 일반 대중에게 읽히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손으로 베껴 쓴 원고 형태로 소수 친지들 사이에서만 돌려가며 읽히는 유통 방식을 취했다는 것도 당시 시가 지니는 귀족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1) 16세기의 소네트 (sonnet)

소넷트는 복잡한 각운을 가진 14행의 서정시로서 흔히 사랑을 주제로 한다. 14세기 이태리에서 유행했고 그 대표적인 시인인 페트라르크의 이름을 따서 페트라르칸 소네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페트라르칸 소네트는 abba abba / cde cde 의 각운을 가지며 앞의 8행을 옥타브, 뒤의 6행을 세스텟이라고 하는데 흔히 시의 주제가 각각 옥타브와 세스텟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페트라르칸 러브라는 말을 보통명사로 만들기까지한 이 시들의 주제는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으로 화자는 상대방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그 여성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것을 절망하며 자신의 슬픔을 토로한다.

 

이와 같이 소네트를 영국에 처음 들여온사람은 와이어트 였고 이것을 영국화한 시인이 써리 백작이었다. 그는 각운을 abab cdcd efef gg로 바꾸고 각 쿼트레인, 즉 4행씩을 기본적인 단위로 시상을 전개했으며 영문학상 최초로 무운시 즉 각운이 없는 약강 5음보를 사용했으니 이 무운시는 이후 영문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스타일이 된다.

소네트 장르는 시드니, 스펜서, 셰익스피어 등에 의해 다양하게 실험되었고 특히 이들은 백개가 넘는 소네트들을 일정한 주제로 엮어서 소넨트 싸이클을 만들기도했다. 소네트는 엘리자베스 여왕 말기 10여년 동안 가장 융성했으며 17세기에서는 거의 소멸한 장르이다.

 

(2) 17세기의 전반의 시

17세기 전반기의 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형이상학파 시인들과 왕당파 시인들 그리고 이 두 범주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밀턴이다.

형이상학파 시인이라는 범주는 사실 꼭 들어맞니는 않는 이름으로서 형이상학파란 이들의 공통된 사상이나 가치관을 일컫는 말이라기보다는 이들의 기법이나 스타일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형이상학파라는 표현을 최최로 쓴 사람은 17세기 말의 드라이든이고 이 말을 여러 시인들에게 확대 적용했던 것은 사무엘 존슨인데 그에 따르면 형이상학적인 위트란 서로 전혀 어울리지않을 것 같은 상이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비유로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16세기의 사랑시에는 루비 같은 입술이라든가 장미꽃 같은 뺨 등 예측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비유로 사용되었던 것에 비해 존돈은 두 연인 관계를 컴파스에 비유하면서 어울릴 것 같지않은 두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해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비유를 컨시트라고한다. 사실 형이상학파 시들은 이밖에도 이전의 16세기 시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16세기의 시들이 감미롭고 아름다운 시어를 사용하였다면 이 시들은 구어체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16세기의 시들이 화려하고 조화로운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이 시들은 파격적인 리듬과 스타일을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형이상학파 시들은 가상의 청자를 설정하여 대화를 주고받는 극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예컨대 존돈의 the flea의 경우 상대방 여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여성의 반응까지 고려하면서 마치 하나의 작은 드라마처럼 시가 전개된다. 대표적인 형이상학파 시인으로는 존돈, 조지 허버트, 리처드 크로쇼, 헨리 본, 앤드류 마블 등이 있다.

왕당파 시인들로는 벤 존슨과 토마스 커루, 존 써클링 경 ,로버트 헤릭, 에드먼드 월러 등이 있고 이들은 벤 존슨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벤의 아들들이라고 불렸다. 형이상학파 시와는 달리 이 시들은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였고 음악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들의 시는 압축된 완결미를 추구하였으며, 특히 벤 존슨은 라틴어고전에 영향을 받아 후에 드라이든의 신 고전주의 시에 전범이 된다.

위에서 열거된 두 시파의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시인이 밀턴이다.

밀턴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1630년대에는 이미 자신의 스타일을 세웠다. 그러나 그후 청교도 형명기 20년동안 밀턴은 문학은 잠시 접어두고 정치적 의무에 전념해서 그는 크롬웰 정부의 라틴어 비서로서 유럽의 적대국가들에게 공화정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그가 문학으로 다시 돌아온것은 혁명이 실패하고 왕정이 복고된후로서 그는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세 대작 서사시를 완성한다. 밀턴의 주요 저작이 왕정복고 이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17세기 전반에 포함시킨것은 그의 시들이 왕정복고 이후의 신고전주의 시들보다는 오히려 16,17세기 전반의 르네상스 문학에 오히려 가깝기 때문이다.휴머니즘적인 학식과 청교도인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17세기 후반에는 생소한 문체가 되어버린 무운시를 사용해 신의 방식을 인간에게 정당화시키기 위하여라는 야망찬 목적으로 시를 쓴 밀턴은 그런점에서 17세기 전반에 속하지만 여타의 다른시파들과 구분되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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